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끈 산업화는 수천 년 이어져 온 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좌파 진영에서 박 전 대통령은 '무자비한 독재자'다. 또 독립군을 때려잡은 일본 육사 출신의 친일파다.
박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61년 82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이 1979년
1,647달러로 급증한 사실은 그들의 머릿속에는 없어 보인다.
'근대화의 영웅'으로 볼 수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안타깝게도 국내보다 해외에서 후한 평가를 받는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민주화는 산업화가 끝난 후에나 가능하다.
인물을 독재자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박정희는 누가 뭐래도 세계가 본받고 싶어 하는 모델”이라고 극찬했다.
<네 마리의 작은 용>의 저자이자 평소 한국 군사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취해 온 에즈라 보걸 하버드대 교수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은 없다
그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국가에 일신을 바친 리더였다”고 평했다.
공산권 지도자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박정희 관련 책은 다 가져와라. 그는 나의 모델”이라고 했고,
중국 개방을 이끌었던 덩샤오핑은 평소 “박정희는 나의 멘토”라고 말했다.
미국 랜드(RAND) 연구소는 “덩의 개혁은 박정희 모델을 모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불굴혼 박정희>(전 10권)의 저자인 고정일 동서문화사 대표의 이야기다.
"세계는 오늘날 박정희 전 대통령을 탁월했던 세계 3대 지도자라고 설명한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 한국 근대화 연구 분야 석학인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석좌교수,
아시아 경제 대가인 와타나베 도시오 다쿠쇼쿠대학 총장, 중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마홍(2007년 10월 별세) 등
세계 석학들은 박 전 대통령을 ‘부존자원 없는 상태의 국가를 교육 확산, 국력 결집으로 성공적으로 산업사회에 진입시킨 대표적 지도자’로 평가한다. 3대 혁명가에게 쿠데타는 목적이 아닌 하나의 방법이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다른 편에 속하는 사람이면 아무리 공(功)이 커도 과(過)만 보는 당파성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박정희"라고 지적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2
"박정희 대통령은 나의 롤모델"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민주화란 것은 산업화가 끝나야 가능한 것입니다.
자유라는 것은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지고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 2001.6.7 앨빈 토플러 (미래학자/뉴욕대학 명예박사)
"박정희 근대화 성공으로 중산층 창출이 되고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 토대가 되었다.
박정희야 말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 2005. 2.4 오버홀트 (美 카터 전 대통령 수석비서관)
박정희는 조국근대화에 확고한 철학과 원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시의적절한 제도적 개혁을 단행했다.
매우 창의적이며 능률적이었다.
- 카터 에커트/하버드대학교수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중국의 덩 샤오핑,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 싶다"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겼던 지도자"
- 리콴유/싱가포르 수상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이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인 무역국가가 되었음을 경이롭게 본다.
- 폴 케네디/예일대학 교수
박정희의 역사적 큰공헌은 그의 뛰어난 지도력하에 한국을
저개발의 농업국가에서 고도로 성장한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이다.
- 앰스덴/MIT정치경제학 교수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의 목표는 자립경제력을 갖춘 현대국가의 건설이었다.
대통령은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 맨스로프/러시아 안보연구소 교수
중국의 덩 샤오핑 등은 세계 유례없는 한국의 연 10% 급성장,
경제부상에 놀라며 박정희식 경제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 마홍/중화인민공화국정책과학연구회장
"박정희 대통령은 매우 강한 지도자였으며 대기업을 일으켜
국부(國部)를 증진시킨 훌륭한 지도자이다"
- 말레이시아 전 총리 마하티르 -
중국의 덩 샤오핑의 개혁은 박정희 모델 모방 - 美, RAND 연구소
"매 회의마다 우리 농촌과 국토에 가졌던 뜨거운 애정,
빈곤했던 우리 역사에 대한 한에 가까운 처절한 심정,
그리고 빈곤을 극복하여 경제대국을 이룩하려는 치열한 집념에 숙연해지곤 했다"
- 고건
요즘은 박정희 대통령이 좋게 인식되는 것 같은데, 옛날에는 유신이니 해서 비판이 많았지만 초기 새마을 운동을 한 덕택에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되었던 점은 훌륭한 점입니다. 나도 영화를 통해 서울을 보았는데, 서울은 일본의 도쿄보다 훌륭한 도시로 조선이 자랑할 만한 세계의 도시입니다. 서울에 가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도 참배하고 싶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 김정일, 1999년, 현대 고 정주영 회장과의 대화중
"많은 몽골인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개발모델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
한국은 박 전 대통령의 지도 아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개발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 잔라빈 차츠랄트, 前 몽골 총리
"대통령 박정희(1961∼79)는 강력한 손으로 남한을
농업 국가에서 산업 능력을 가진 국가로 형성했다."
- 독일, 국정 교과서
"신화를 만든 한국경제의 건축가!,
20세기의 위대한 아시아 지도자들 중 20명중에 한명"
- 美, 뉴욕타임스 -
"어렵던 시절, 한국을 이끌어 고도로 공업화된 민주국가로 변화시킨 역사적 역할을 담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후임 대통령들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유산을 남긴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지도자들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 -
"박정희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다. 박정희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는 국가에 일신을 바친 리더였다"
- 2006.11.11 에즈라 보겔, 美 하버드대 교수 -
"1965년 필리핀의 1인당GNP가 270달러였을 때
한국의 1인당GNP는 102달러였지만 2005년 필리핀의 1인당 GNP가 1030달러였을 때
한국의 1인당GNP 16500 달러로 변하였다"
"가난한 절대빈곤의 후진국에서 조국보다 잘살던 동남아 나라들을 따돌리고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이 존경스럽다"
-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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